하작가의 NFT 도전기

하작가입니다.  제가 이번에 NFT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NFT 관련하여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적으로 시작한 것이 어쩌다가 실제 비지니스로 확장되가고 있어 그 이야기를 도전의 측면으로 기록해 보았습니다.  

NFT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NFT일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저는 지금 그 뜨거운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현재 NFT를 만들고, 팔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연계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NFT의 N자도 몰랐던 제가 어떻게 NFT라는 영역에 발을 딛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블록체인이 왜 거기서 나와?

우선 NFT를 설명하려면 블록체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블록체인이 2007년 탄생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  단어를 들어 본 것은 한 3~4년 전쯤 유튜브 또는 IT 관련 뉴스에 가끔씩 등장하여 스치듯 들어 봤을 뿐입니다. 

들어 본들 당장 내 삶에 관련이 없으니 그냥 시큐리티관련 기술이겠거니 했고, 우리 지란지교 같은 회사들이 앞으로 관련 비지니스를 만들 분야겠구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작년 말쯤에 NFT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했고, 그것이 블록체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되면서 그 연결고리가 궁금했고, 그 와중에 비트코인이 그 핵심기술의 보상이라는 점도 알게되면서 호기심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사실 이 호기심은 나중에 제가 NFT를 시작했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스스로 알게되었습니다. 일단 뭐라도 조금씩 배우는 건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좀 파편적이긴 하지만 블록체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입니다. 여기서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위키 등을 찾아 보시면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Web3.0 #탈중앙 #DAO #렛져 #dApp #스마트컨트렉트 #채굴 #코인 #토큰 #메인넷 #NFT #가스 #민팅 #NFT마켓 #메타버스

블록체인과 NFT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우선 저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NFT하면 응…’장난처럼 그렸는데 그 비싼 그림 아냐? ‘ 라고 말들을 합니다. NFT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크립토펑크라는 프로젝트와 비플(Beeple) 이라는 사람의 매일 첫 5,000일 이라는 그림이 미국 크리스티 경매장에 한화 777억에 팔렸다는 뉴스를 통해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사실은 NFT=그림 공식은 틀린 답입니다. NFT라는 개념이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시각적으로 실체화 시키기 좋은 것이 이미지, 즉 그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NFT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NFT는 소리가 될 수도 있고, 건물이나 땅 등의 부동산에도 적용할 수 있고, 문자로 이루어진 문학, 철학, 그 어떤 개념이라도 NFT화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음악이 mp3 형식의 파일로 탄생하면서 불법 복제가 아주 보편화 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DRM 같은 방식으로 불법 복제에 대항하였으나 여러가지 사용상 불편함이 발생하였고, 자연스럽게 기술이 사라졌습니다.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림이 디지털로 바뀌는 순간 무제한 복사는 당연한 것이었기에 여기에 불법이 끼어든다면 그것은 불가항력이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의 의식이 함양되기만을 속수무책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블록체인이 생기고 블록체인의 핵심 기술을 이용하면 복제를 막을 수 있는 아니 복제를 하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기술이 바로 NFT입니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는 그 누구도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약관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NFT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 마음을 건드린 건 블록체인의 그 기술도 아니고, NFT 그 자체도 아닙니다. 블록체인이란 개념이 생기고 그 안에서 파생된 무수한 원리들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탈중앙화’라는 원대한 포부였습니다.

‘탈중앙’이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거부감이 들거나 또는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어떠한 정보를 다루거나 취득을 할 때는 중앙의 어떤 곳으로부터 승인을 구하거나 얻은 다음 정보를 기록하거나 받을 수 있지만, 이제는 각자가 그 정보의 주인이 되어 나를 중심으로 그 정보를 관리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유튜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유튜브를 보거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 하는 상황을 상정해 보면 중앙에 구글의 유튜브 서버가 있고 그 서버를 통하여 영상을 받아서 보거나 그 서버에 영상을 올려서 공유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앙의 컨트롤 타워를 통해 이루어지는 web2.0의 정보 처리 방식입니다. 

하지만 비트토렌트 같은 것은 중앙 서버가 없이 개개인 각자가 노드가 되어 시드를 공유하며 다운과 공유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그 보상으로 토큰을 받는 방식. 이것이 web 3.0 탈중앙화 방식입니다.

NFT는 그 계보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 개념을 통한 나만의 새로운 비지니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NFT를 위해 태어난 사람

오래 전에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통화를 하거나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닌데 내게 전화를 걸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대뜸 전화기 넘어로 하는 말이 “하작가님, NFT 안하세요?” 그리고 NFT는 어떤 것인데 그게 정말 요즘 대세다 그런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고는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요즘 NFT가 대세긴 대세인가보다…그래서 나한테까지 권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로 제 인스타그램 DM에도, 문자로도 각각 다른 지인들이 연락을 해오는데 그 내용은 하나같이 내가 NFT를 하면 딱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NFT 하기도 전에 지란지교데이터 이기복 부장이 내게 남긴 인스타 댓글)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NFT를 생각하면 내가 생각나나 보다. 내가 NFT 하기 딱 좋은 사람인가보다. 이쯤되면 내가 NFT를 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겠구나. 까짓것 저질러 보자.

NFT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NFT를 발행하는 것으로 첫 발을 떼었습니다. 유튜브 한 두개만 봐도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일단 메타마스크란 지갑을 만들고, 카이카스와 연동하고, 이더리움이나 폴리곤 또는 클레이튼 체인에 연결하고….휴….사실 어려웠습니다.

지금에서야 이런 건 아무 어려움도 아니지만 처음에는 하나하나가 난관이었습니다. 지갑? 오픈씨? 클레이튼? 매틱? 컨트렉트? 민팅? 가스비? 하여간 이런 난관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몇 개의 NFT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민팅이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 것처럼 익숙해졌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오픈씨라는 세계 최대 NFT 마켓에 내 그림이 NFT화 되어 올라갔지만 누가 내 그림을 사가겠습니까? 내가 누군지 알고 그림을 비싸게 사주겠냔 말입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NFT는 이런 특성이 있구나. 이 세계는 기존의 그림쟁이 세계와는 분명히 다른 구석이 있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구원의 손길

12년 전에 알고 있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받고 보니 그 전화 역시 NFT 이야기였습니다. 무려 12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이 뜬금없이 전화하여 NFT 이야기를 꺼내다니. 이 전화까지 받고 나니 정말 나는 운명적으로 NFT를 하게 되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누구를 데리고 나갈테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암호화 화폐 투자 관련 유튜버였고, 다수의 구독자와 커뮤니티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NFT를 만들고 삽질할 때 느꼈던 거지만 NFT는 일종의 팬 기반, 즉 이것을 유통할 만한 커뮤니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게되었고, 이 계기가 나한테  절대 부족한 커뮤니티에 느껴던 갈증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세 사람은 NFT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당장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는 합의를 보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정기 모임을 갖으며 한 주 동안 자신이 준비해 온 내용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모습을 대충이나마 갖추어 나갔습니다.

크립토페인터스

처음에는 아주 다양한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범위가 너무 방대하다 보니 프로젝트의 모양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의 중심을  작가에 두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떤 사업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 블록체인 바닥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는 반드시 사업계획서에 해당하는 ‘백서 White Paper’ 라는 게 필요한데 일종의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목적 또는 명분에 해당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명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작동하고, 확장되는 수순을 따릅니다. 이 방식이  가장 좋은 흐름입니다. 

 Crypto Painters는 작가들을 성공시키고, 그 성공의 댓가로 작가와 커뮤니티가 다같이 보상받는 시스템을 표방하기로 했습니다. 

크립토페인터스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찾아 주세요.
그곳에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밝혀두었습니다.


cryptopainters.io

여담이지만 저 도메인을 구할 때 느낀 점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dot COM에서 좋은 이름을 선점하려 애를 썼지만, 이제는 dot IO 도메인 전쟁이라는 걸 알겠되었습니다. 그리고 닷컴은 2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지만 닷아이오 도메인은 기본적으로 7만원에서 출발하고, 유명한 가비아 같은 곳에서는 닷아이오 도메인은 무조건 20만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도메인만 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 팬이 되어 주세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NFT를 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존재 여부가 제 1 순위여야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NFT 마켓, 클립드랍을 운영하는 그라운드X  한재선 대표도 말했지만 이제 100명의 팬만 있어도 작가가 먹고 살 수 있는 생태계다. 그것이 바로 NFT와 커뮤니티의 상생 관계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커뮤니티의 여부는 NFT 프로젝트의 성패가 갈리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크립토페인터스의 방향성이 정해지자 그 이후로의 일정은 실타래 끌려 나오듯 슬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우리 멤버인 유튜버의 구독자들 중심으로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새롭게 커뮤니티를 모집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이제 프로젝트는 출항을 준비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성격도 정해졌겠다. 커뮤니티도 구성되겠다. 판매할 그림도 1,000장을 준비해 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천 장의 그림을 어떻게 민팅(NFT로 만드는 과정)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오픈씨에 업로드를 할 것이고, 그것을 배포하는데 어떤 툴을 사용할 것인지 너무도 막연한 상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지 5~6장 올리는 것은 블로그 포스팅 하듯 쉽지만, 그것이 천 번을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게 됩니다. 자동으로 올리는 매크로를 짜서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저급한 기술이고 그렇게 하다가 중간에 꼬이기라도 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아주 위험한 작업이란 걸 알겠된 것입니다. 

사업을 해 본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 커뮤니티를 운영해 봤던 사람 이렇게 모였지만 정작 기술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개발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기업들도 개발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 같이 뜨네기 프로젝트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개발자가 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는 그곳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개발자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프로젝트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치영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반적인 회사 업무 이야기를 마치고 대화 끄트머리 쯤 ‘하작가님 혹시 NFT에 대해서 아세요? NFT 하실 생각 없으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 모양을 더 만들어 둔 다음 오치영 사장님과 상의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말이 나온 이상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상황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들어 보고는 역시 우리가 개발자 부분이 약한 것을 간파하고는 그 부분을 도와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게 됩니다. 그 분들은 바로 우리나라 암호화 화폐 지갑의 대표 브랜드 디센트의 백상수 대표님과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박사 출신이고 현재는 블록체인 전문 기업의 대표이시기도 한 하재열 박사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두 분을 오치영 사장님 방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그 분야의 실질적인 경험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고, 기술적으로나 마케팅적으로나 도움을 주시기로 그 자리에서 바로 약속하셨습니다. 

이 분들을 뵙기 전까지는 그냥 하나의 가능성을 품은 작은 프로젝트였었는데 , 뵙고 난 이후로는 뭔가 무게감을 가진 어떤 사명 같은 프로젝트로 변경되었고 반드시 성공 시키고 싶다는 마음 자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오픈

자잘한 사연들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끌고 온 프로젝트가  발사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 드디어  판매를 하기 전날. 그 동안의 뒤를 돌아 봤습니다.

우리 팀이 맨 처음 만난 날 21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라서 기억도 잘 납니다. 잊을 수도 없겠네요. 판매 하루 전 22년 2월 27일 대략 4개월의 시간 동안 분주하게 달려 온 시간들이 스쳐갑니다. 

만약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갈 원동력 자체가 남기나 할까? 결론은 쓸데 없는 걱정. 차분히 준비해 온 결과가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준비한 물량은 6분만에 완판되었습니다.

크립토페인터스의 미래

크립토페인터스의 1차 프로젝트는 정말 감사하게도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바탕은 충분히 다지게 된 셈입니다. 어찌된 건지 저희도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이곳 저곳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콜라보레이션 제의도 끊이지 않고 들어 오고 있습니다. 벌써 몇몇 회사들과는 MOU 맺었고, 곧 공동으로 진행될 프로젝트도 계약 완료하였습니다. 국내 법인과 ICO를 위한 해외 법인 설립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크립토페인터스에 지원하는 작가들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습니다. 벌써 영입 작가 1호도 홈페이지에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아주 순항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NFT는 아직 시작에 불가합니다. 더 크고 넓은 시장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혹자는 2000년의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른 web 3.0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있습니다. 그 때와는 다른 환경, 즉  NFT를 받쳐 주는 많은 플랫폼과 생태계가 이미 구축되어 있습니다.

지란지교패밀리도 NFT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경험이 그 프로젝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dAPP으로 실현해 낼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쌓은 지란지교의 경험과 기술이라면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란지교패밀리 여러분의 도전이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관련 공부를 해보세요. 저같은 문외한도 더듬더듬 해낼 정도면 우리 패밀리의 우수한 개발자와 기획자라면 저보다 백배천배는 잘 해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NFT를 시작하고서 얻는 소중한 경험

저는 엉뚱한 생각 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들 중에 실행으로 옮기는 비율은 매우 저조합니다. 그런데 이번 NFT에 대한 생각은 곧 바로 실행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결과는 달콤했습니다. 

왜 이 생각은 멈칫거리지 않고 직진했을까? 무엇이 나를 주저함 없이 실행으로 밀어 넣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백번 들었던 말인데 내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나니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찾아 봅시다. 좋아하는 일. 내가 제일 잘하는 일.


하작가였습니다.

콘텐츠 검색

  • 카테고리 선택

  • 기간 선택

    ~

(Notice!!) story.jiran.com 내의 검색 결과가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