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구조조정과 감원 소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테크 기업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앞다퉈 대규모 감원에 돌입한 것은 구경꾼 입장에선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일부 테크 기업들은 불황을 기회로도 보는 것 같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를 보니, 호주 온라인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인 캔바(Canva)도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지금 상황을 업계 ‘원톱’인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Adobe Creative Cloud)를 상대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어려울 때는 공짜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안을 찾은 기업들이 늘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사용자 90%가 무료 쓰는 데도 연매출 10억달러 돌파
캔바에 대해서는 그동안 몸값이 비싼 비상장 SaaS 기업 정도로만 알아 왔는데, 좀 더 살펴보니 고성장을 위해 적자를 감수해온 유명 B2B SaaS 업체들과 비교해 수익성이 매우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 쪽 밖에 있는 이들에게 캔바는 좀 생소한 회사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규모를 보면 이미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2012년 설립된 캔바는 무료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찾는 학교와 비영리 단체을 거점으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지금은 1억명 이상이 캔바 온라인 플랫폼에서 기업 프레젠테이션 자료나 각종 초대장 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중 10% 정도가 팀 작업 역량을 포함해 부가 기능을 쓰기 위해 캔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여전히 사용자 대부분이 무료 버전을 쓰고 있다는 건데, 그런데도 캔바 매출은 이미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캔바는 또 2017년부터 수익도 내고 있다. 성장률은 높아도 수익을 내는 B2B SaaS 회사들은 많지 않은데, 캔바의 경우는 이미 돈을 잘 벌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7억 달러 정도를 투자 받았음에도 대부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 2021년 투자를 유치하면서 회사 가치를 400억달러 규모로 평가 받은 것도 돈 잘버는 역량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캔바 경영진들은 자사 비즈니스 모델이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 잘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캔바는 기존 디자인 플랫폼을 웹사이트 디자인, 프레젠테이션, 프린팅 도구를 포함하는 새 워크스위트(worksuite)제품과 통합할 때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캔바 프리미엄 버전의 경우 기업들은 5명 사용자까지 연간 150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어도비와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9월 출시된 워크스위트에 대해 캔바는 어도비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대해서도 저렴하고 직관적인 대안이 될 것임을 부각하는 모습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어도비와의 한판 승부
고성장하고 있다 해도 규모 측면에서 캔바는 아직 어도비에는 한참 못미친다. 어도비 연매출은 158억달러 규모다. 위협적인 도전자가 등장하면 언제든지 물량공세를 퍼부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실탄도 충분하다.
캔바를 향한 어도비의 견제구는 이미 던져 졌다. 2021년 12월 어도비는 보다 가벼운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능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층을 겨냥해 캔바와 유사한 가격대인 어도비 익스프레스 플랫폼( Adobe Express platform)을 다시 선보였다. WSJ에 따르면 유료와 무료 버전이 섞인 프리미엄(freemium) 시각 디자인 도구인 어도비 익스프레스 플랫폼 이후 2000만명 이상 신규 가입자를 확보했다.
클라우드와 협업이 확산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어도비의 행보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어도비는 캔바와 경쟁 관계로 분류되는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체인 피그마를 200억달러 규모에 인수하는 카드도 뽑아들었다.
피그마와 캔바는 모두 원격 근무,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는 협업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된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 사용자들은 오랫동안 소셜 미디어에 이미지와 영상을 올려왔는데, 이같은 스토리텔링 방식은 이제 작업 현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9월 워크스위트를 내놓기 전 이미 500명 이상 규모 기업들 사이에서 캔바를 유료로 쓰는 팀들 수가 5만5000개 수준이었다는 것은 기업내 콘텐츠 제작에서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중량감을 보여준다.
이를 감안하면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를 계기로 협업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전략을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캔바가 점점 거세지는 어도비의 견제구를 버텨 내고 지속 가능성 계속 강화해 나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B2B SaaS판에서 어도비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보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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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qua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