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스나이퍼 이야기

글 : 윤두식

스팸스나이퍼를 시작하기 전

지란지교소프트가 새로운 리더쉽을 구축하는 사업부 체제로 전환되었다.

사업부 체제란 각자 하고 싶은 전문 분야와 전문성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는 방식이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2000년 ‘보안개발팀’ 이란 이름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처음 인적 구성은 나를 포함하여 총 3명으로 아주 미미하게 시작했다.


우리 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설의 두 인물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중의 첫 번째, 고필주.

‘고필주’ (당시 알바생)는 금융결재원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위해 아르바이트로 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고필주(직책 생략)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로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본인의 말로는 나이트클럽이나 놀러가고 그 안에서 인생의 낙을 찾는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게 식상해지고 이제 그만 놀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 

술김에 나이트클럽에서 PC통신 천리안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던 중 운명의 지란지교소프트를 만나게 되었다.

면접 보러 온 날 일화다. 

사무실 입구에서 오치영 대표를 마주쳤는데, 

그때 그가 했던 첫마디 “여기 면접 보러 왔는데, 오치영씨가 누구신가요?” 

그게 오치영 대표와 고필주 그리고 우리들,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고필주 사원을 주축으로 금융결재원, 신한은행, 건설공제조합 등 

보안SI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스팸스나이퍼의 시작

2000년 초부터 인터넷이 본격 활성화 되면서 전국 기업에 스팸메일이란 엄청남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스팸의 피해가 나날이 커지자 스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기업이라면 누구나 고민을 하던 시절이다.

필요가 있는 곳에 시장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란지교소프트는 스팸 차단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초기에는 오픈소스로 메일 서버를 수정하여 , 아주 초보적인 스팸차단제품을 구현했다. 

기껏해야 제목에 (광고)라는 단어가 있으면 차단하는 등의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 스팸차단 엔진의 기초는 고필주 사원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름은 ‘스팸스나이퍼’였다.

이때 스팸 차단 제품 시장을 살펴보면,기존에 e메일 서버를 개발하던 국내 많은 이메일 개발사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발전된 스팸 차단 필터를 구현하여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스팸스나이퍼’ 초기 버전은 국내 경쟁사와 POC를 하는 족족 경쟁에서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우리는 그때 이메일 규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부재한 상황이었다.

고객사로부터 피드백으로 지적된 부족한 기능이나 버그는 사무실에 돌아와서 밤새도록 구현을 하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패치된 버전을 다시 고객사에 가져다 주고 추가 POC진행하는 등 임기응변과 

밤샘으로 1년여를 정신없이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이 때를 시장적응 기간이라 여겼다.

첫 납품

2001년 말, 드디어 스팸스나이퍼 첫 납품의 시간. 

수많은 경쟁에서 밀리다가 2001년 말 부산시 동아엘텍에 우여곡절 속에 첫 납품을 하게 되었다.

이후 ODO님 지인을 통해 포스콘에 납품하는 등, 몇 십개의 레퍼런스를 계속 만들며 서서히 제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고필주 팀원에 

이어서 두 번째 천명재.

2002년 스팸스나이퍼 ver 2.0의 관리자 기능 개발을 위해 웹개발자를 뽑던 중 천명재 사원을 프리랜서로 뽑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천명재 이사의 성격은 시작과 바닥을 알기 어렵다. 

이 때 천명재 사원의 성격은 지금에 비해 훨씬 더 까다로웠다.

그러나 개발실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그 단점을 덮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천재 개발자 천명재까지 투입된 스팸스나이퍼는 순항하는듯 보였다.

 그러나 2003년 서울대학교 납품과 최초의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되는데,

서울대학교는 규모나 상징성으로나 모두 가장 큰 잠재고객이었다. 

우리는 그 서울대학교 입찰에 참가한 것이다. 

운 좋게도  POC없이 발표만으로 수주를 하는 쾌거를 이뤘다. 쾌거라고 표현했는데 위에서 말한 

서울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상징성을 모두 가져 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그렇다.

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납품 설치하자마자 우리의 제품이 서울대의 이메일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다.

바로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운보다는 실력으로 수주를 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팸스나이퍼의 모든 개발자가 서울대에 상주하며 5개월이란 시간을 고군분투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진짜 눈물의 군만두, 짜장면을 삼키며 ‘시스템 정상가동’ 그 하나의 염원을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그 때 그랬었지하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고객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욕은 그 때 다 들었던 것 같다.

필사의 심정으로 노력한 결과일까?

서울대 전력 투입 후, 모든 기능이 업그레이드되고, 그제서야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만한 제품으로 재탄생하였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보다.

이 해프닝 이후 천명재 사원이 계약이 끝난 후 퇴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윤두식, 고필주 등이 삼고초려해 끝까지 

회사에 남도록 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하여 지금의 천명재 이사가 있는 것이다. 

스팸스나이퍼의 성장

서울대의 담금질과 몇몇 큰 대형 고객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후, 

스팸스나이퍼는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초기 경쟁사들은 큰 돈이 되는 중.대형고객사에 영업을 집중하였지만,

지란지교소프트는 스팸차단 요구가 있는 작은 기업들까지 요구를 수용해 최대한 고객의 수를 늘이는 전략을 펼쳤다. 

회사의 상황과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한 적절한 판단였다고 본다. 

 스팸 차단 제품의 속성은 바이러스차단과 비슷한 시장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패턴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업데이트를 한다면, 고객으로부터 지속적인 수용을 이끌어 낼 수 가 있고, 

결국 그것은 회사를 계속 영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쉽게 말해서 계속해서 기업으로부터 비용을 받을 수 있다면 그 기업들이 비록 작은 기업들일지라도 박리다매 격으로 

지란지교소프트의 고정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패턴을 이용하여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한다면, 끊기지않고  안정적인 이익을 보장받음으로써 

스팸스나이퍼와 지란지교의 성장의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기술 서비스의 높은 퀄리티’다.

 스팸스나이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기술지원엔지니어의 대고객 서비스 퀄리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서비스 퀄리티가 높아지면 고객의 충성도는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유지된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도 가져가야 하는 자세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스팸스나이퍼는 대한민국 1위 안티스팸 제품이 되었으며,

그 후 오피스하드, 모바일키퍼 등 차세대 제품들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또한, 팀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하여  지란지교시큐리티의 분사 이후 2016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였다.

상장 공모자금을 기반으로 모비젠과 에스에스알을 인수하여 2018년 에스에스알을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켰으며, 

2021년는 모비젠의 코스닥 상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여년전 보안개발팀 3명의 작은 날개짓이 대한민국 보안분야의 한 분야를 책임질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에 자만하지 않고 더욱 더 성장하는 지란지교시큐리티가 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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